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코묘 덴노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642년 9월 2일 황태자가 되었고, 그해 12월 15일에는 친왕선하[* 親王宣下. 황족의 자녀에게 친왕이나 내친왕(内親王, 여자 황족을 지칭)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.]가 되었다. 천황의 자녀라 해도 친왕선하를 받지 못하면 친왕이나 내친왕이라 불릴 수 없었다.[* 이것은 [[조선]]이나 [[중국]]도 마찬가지였다. 조선시대의 XX대군, XX[[공주]] 하는 칭호도 전부 국왕이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내려주는 것이었다.] [[1643년]] [[9월 27일]]에 11세의 나이로 '''원복'''[* 元服, 성인식. 훗날 이것이 [[https://youtu.be/AtS3d80wXtg|'''加冠の儀''']][* 어릴 적의 [[나루히토|히로노미야 나루히토]] 친왕의 성인식]이라는 성인식으로 발전되어 《[[일본국 헌법]]》이 제정된 이래 현재는 만 18세~20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루게 되고, 황족 남성은 [[소쿠타이]], 황족 여성은 [[쥬니히토에]]를 입게 된다.]을 치렀고, 그해 10월 3일(1643년 11월 14일) [[메이쇼 덴노]]가 양위를 하자, 10월 21일에 즉위식을 거행했다. 1653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자, 고코묘 덴노는 만약을 위해 1654년에 태어난 막내 동생(훗날의 [[레이겐 덴노]])을 자신이 죽기 전에 양자로 삼았다.[* 조선이나 중국이라면 동생을 양자로 삼아 자리를 계승시키는 것은 종법 질서를 어그러트린다고 하여 있을 수 없었지만, 일본에서는 그런 사례가 많았다. 조선에서 [[정종(조선)|정종]]이 [[태종(조선)|태종]]을 '왕태자'로 삼은 예도 있기는 했지만.] 당시 그에겐 딸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. 결국 [[천연두]]로 인해 이듬해인 [[1654년]]에 22세로 붕어했다. [각주] [[분류:천황]][[분류:1633년 출생]][[분류:1654년 사망]][[분류:교토시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